속초댁 서재/글방

동서울 터미널

파도와 바람 2010. 2. 26. 18:49

몇달 전에 TV에서 동서울 터미널의 72시간을 보여준 적이 있다. 몇년 전만 해도 내가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에 가야 하는 일은 1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었지만, 요즘은 일주일에 2번은 터미널에 간다. 한번은 동서울 터미널, 또 한번은 속초시외버스터미널.

금요일 저녁 회사 일을 분주히 끝내고 6시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땡"함과 동시에 회사 문을 나선다. 강변역까지는 약 15분, 걷고 기다리고 하는 시간을 포함하면 넉넉하게 30분은 잡아야 버스 시간을 맞출 수 있다.

처음 속초와 서울을 왔다 갔다 할 때는 미리 티켓을 예매도 하고 했었는데, 이것도 자주하다 보니 꾀가 생긴다. 대충 시간을 맞추어 터미널에 도착하여 "미시령으로 가는 속초행 제일 빠른 거 한 장이요"을 말하고 티켓 한 장을 받아 쥔다.

운이 좋으면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지만 요즘 속초행 버스는 매회 만원이어서 20~30분 기다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공항하고는 달라서 앉을 곳도 마땅치 않고 그렇다고 상가가 잘 발달되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터미널 내부를 한바퀴 돌아도 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답답하여 밖으로 나오면 담배를 아직 끊지 못한 사람들의 연기들 때문에 이리 비키고 저리 비키다가 다시 실내로 들어와 가판대 서점 앞에서 시간을 보낸다.

정식 서점이 아니니 책을 집어드는 것도 눈치가 많이 보인다. 사지도 않을 거면서 책을 들고 읽으면 코앞에 앉아 있는 주인아주머니가 째려보는 눈매가 보통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책 제목만 본다. 이미 읽은 책도 있고, 책 이름은 아는데 아직 못 읽은 책도 있고, 전혀 새로 보는 책도 있다. 이렇게 가판 서점 앞에서 책 제목을 보고 있노라면 20분은 후딱 간다.

이제 슬슬 속초행 버스가 서는 4번 플랫폼으로 가볼까. 이 버스에 타는 사람들은 속초에 다들 무슨 이유에서 가는 걸까? 기회가 된다면 1번에 앉은 사람부터 28번에 앉은 사람까지 꼭 물어보고 싶다. "속초에 왜 가세요?"


버스가 출발하고 무심히 하늘을 올려다 보니 달이 예쁘게 떠 있다. 카메라 셔터를 몇번 눌러 보았지만, 눈으로 보는 느낌을 그대로 전하기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