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댁이야기

우리 부부가 이리 행복하게 사는 이유는...

파도와 바람 2013. 11. 4. 14:32
뒤늦게 가을, 겨울 옷을 꺼내려고 옷장을 뒤적이다가
내친 김에 옷이 있는 방을 왈칵 뒤집어 정리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의 흔적이 있는 편지 한통을 발견했지요.


어쩌면 우리 부부가 속초를 선택하게 한 이유 중 하나였던 분의 편지입이다.
속초에 사는 동안, 혹시 이 거리에서 보게 될까, 이 바닷가에서 만나게 될까, 기분좋은 긴장을 주셨던 분이기도 하고요.
끝내 우리가 속초를 떠날 때까지 그런 우연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서울로 다시 이사 온 후, 우연하게 아주 우연하게 연락이 닿았답니다.

그후론 이 분을 통해 속초의 날씨와 소식을 듣고, 가끔은 오징어 냄새와 낙엽까지 선물받는 행운까지 누리고 있죠.

다시 편지 얘기로 돌아오면,
매일 보면서도 잊고 있었는데
편지를 읽으니 사진 속 쟁반과 쟁반을 선물 해주신 분의 사연이, 바로 우리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성의 너도오동나무로 만들어진 쟁반
큰 산불에 타고 넘어진 나무들 사이에서
생명를 이어 우리 부부의 집까지 온 이 인연.
절에 가서 큰 절 하시고 대추차 마시려 들어선
산사 찻집에서 이 쟁반을 사셨다니
이 사연를 다시 되새기고 보니
쟁반이 사뭇 평소와 달라 보입니다.

전자렌지 위에서 이런 저런 물품을 앉고
소리없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던
쟁반을 꺼내 행주로 싹싹 닦아 놓고 바라보며
인연이 담긴 쟁반에게 새로운, 좀더 소중한 역할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