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댁 서재/글방
19세 청년의 고민
파도와 바람
2010. 3. 28. 20:55
아주 오랜만에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19세 청년을 만났다. 아직 부모에게 의지하고 있으니 '어른'은 아니고, 내일에 대한 걱정이 많으니 '아이'도 아니다.
이 청년은 가수가 꿈이란다. 19세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요즘은 이 청년을 괴롭게 하고 있다. 부모님은 다른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좀더 쉬울 것 같은 길을.
난 19세때 뭐했나? 무슨 생각을 했나? 어떤 고민거리가 있었나? 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뭔지를 알기나 했나? 이런 끝없는 자문을 하면서 그 청년을 대하게 되었다.
어른이라는 사람들은 이 청년에게 이런 저런 교훈 섞인 말을 한다. 그 길은 쉽지 않다, 10년 후에는 뭘 하고 싶냐, 정말 가수를 하고 싶은 것이냐, 후회하지 않겠느냐, 등등 그리고 마지막은 "노래 한번 해봐라".
난 19세때 대학에 입학했었고, 우연히 선택한 대학과 학과였지만 그곳이 천명이려니 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다녔던 것 같다. 남부끄럽지 않다는 대학을 들어와서 큰 걱정거리는 없었던 것 같고,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대학내에서의 학점 경쟁은 거의 없었다. 요즘 대학생들이 들으면 무척 부러워할 만한 낭만적인 시절이었다.
그때 난 내가 뭘 원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하고 싶은 그 무엇을 발견하지도 우연히 만나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정말 무난한 19세를 보냈던 것 같다.
지금 고민하는 19세 청년을 보면서, 그때 19세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찾았더라면 지금의 나, 서른 아홉의 내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넌 커서 뭐가 될래?"라고 묻는 어른들이 많았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충의 대답은 "선생님"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서른살을 넘어서면서 주위 사람들이 가끔씩 "꿈이 뭐예요?"라고 물을 때가 있었다. 궁한 대답을 몇 번 하고, 어느 날은 내 꿈을 만들었다. 누가 물어보면 대답해 주려고.
"내 꿈은 바닷물이 철썩철썩 하는 곳에 천정이 높은 집을 짓고 하루종일 책 보고 글 쓰는 거예요". 집의 벽면은 온통 책으로 가득차 있어야 하고, 천정즈음에 꽂아 있는 책을 꺼내기 위해 이동식 사다리도 갖춰야 한다고 덧붙인다.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 줄 알고 상상의 나래를 폈던 것 같다. 지금! 바로 지금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지점에 와 있다. 내 꿈은 유명한 소설가나 시인이 아니었으니, 꿈을 이루는 것은 바닷가와 집, 그리고 책들만 있으면 되니까.
그런데, 머뭇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왜? 나이가 어려 돈이 없어? 네가 원하는 것을 해봐. 더이상 미룰 순 없잖아? 그게 네가 정말 원하는 것이라면."
왜 나는 머뭇거리는 걸까?
사람들은 아스팔트 바닥의 날쌘 타이어 마냥 잘도 돌아가는데, 언젠가부터 갈래길에서 멈춘 내 낡은 바퀴는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아직도 갸우뚱거린다. 어느 길이건 선택을 해야 하는데.
어느 길이건 선택을 하고 그 길을 내딪게 되면 다시 선택의 이 지점으로 돌아 올 수는 없을 것이다. 새로운 길 위에서 새로운 갈래길을 만나게 되겠지.
그러고 보니, 19세의 청년이나 서른 아홉의 나나 같은 고민이다. 내가 19세에 이런 고민을 했었다면 서른 아홉에 좀더 편안한 선택들을 할 수 있었을까? 서른 아홉, 지금 고민을 하고 선택을 하면 쉰아홉에는 좀더 편안할까?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난 19세 청년에게는 아무 말도 해 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