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별 기대없이 들고 읽은 책이 맘에 푹 드는 경우가 있지요. <저녁놀 지는 마을>. 이 책이 바로 제게 그런 책입니다. 처음에 읽을 때는 소설인데 줄거리가 잘 안잡혀서 그만 읽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읽을수록 책장이 자박자박 잘 넘어가는 그런 책. Hard Cover인데 책이 얇고, 페이지에 글자가 적어서 여백이 많이 느껴지는 詩같은 소설이다.
십대 소년의 시선으로 그의 엄마와 할아버지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놓고 삼촌과 할머니 이야기를 곁들이고 있는 이야기. 지금은 교수님이 되어 있는 주인공이, 짱구영감이라고 불리는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 있을 적에 있었던 이야기를 슬며시 늘어 놓고 있다.
주말에 느슨한 마음으로 한적한 바닷가나 산속에서 따끈한 차 한잔을 곁에 놓고 읽으면 딱 좋을 책!
책의 맨 마지막 <유모토 가즈미-저자의 말>에 괜찮은 시가 적혀 있어서 이곳에 옮긴다.
화자이자 시인이기도 한 사토 게이의 <친구 經> 중 일부이다.
어디에 있는가 친구여
길을 걸으며 생각하노라 친구여
일을 하면서 떠올리노라 친구여
둥근지 네모난지 가느다란지 재잘재잘 말하는 친구여
침묵하는 친구 신경질적인 친구 둔감한 친구
몸이 약해서 걱정하게 만드는 친구
살아 있는 동안에 만나는 수많은 친구 우리는 서로서로 친구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노라 친구여
한 마디 말도 없이 사라진 친구 주정뱅이 친구
겁장이 파렴치 그래서 우리는 친구
그립고 안타깝고 얄미운 여자 친구
끊임없이 모여드는 친구
뿔뿔이 헤어진 친구
오늘의 친구 내일의 친구
먼 친구 가까운 친구
더 수많은 친구
(중량)
도저희 잊을 수 없는 친구
헤어질 때 눈물을 흘리며 손을 잡는 친구
헤어질 때 미소를 지으며 모자를 흔든 친구
그때 그곳의 친구
문학을 하는 친구 그림을 그리는 친구
괴로웠던 시절의 친구
함께 전쟁터에 나갔던 친구
늘 나를 격려해준 친구
아직 살아 있는가 친구여
외롭구나 친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