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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댁 서재

NOW : 에크하르트 톨레

 

에크하르트 톨레의 NOW,

절판된 책이라서 사서 볼 수도 없고 도서관에서 빌려 2번 읽었다.

책 읽으면서 메모 해놨던 것 옮겨적는다.

 

 

 

 

 

에고로부터 자유로와지는데 필요한 것은 에고를 자각하는 일이 전부다.

 

영적인 깨달음이란 내가 지각하고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내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이다. 끊임없이 왔다가 가는 그 모든 것들 속에서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無我

 

에고에서 나오는 모든 행위들을 지배하는 밑바탕의 감정은 두려움이다. 하찮은 존재가 될 것 같은 두려움, 자기 존재를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이다.

 

에고의 행위들은 모두 궁극적으로는 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계획된 것이다. 하지만 에고가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그 두려움을 사람들과의 만남, 새로운 소유물 또는 이런 저런 승리들로 일시적으로 덮어버리는 것뿐이다. 환영은 결코 당신을 만족시킬 수 없다. 자기 존재의 진리만이, 그 깨달음만이 당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왜 두려워하는가? 왜냐하면 에고는 자신을 형상과 동일시할 때 나타나는데, 깊은 곳에서 에고는 어떤 형상도 영원하지 않으며 모두가 덧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겉으로는 자신감 있어 보여도 에고 주위에는 언제나 불안감이 있다.

 

만일 누군가 나보다 더 많이 갖고 있고,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할 수 있다면 에고는 위협을 느낀다. '덜'하다는 느낌이 상대방에 비해 생각 속의 자기 존재감을 작아지게 하기 때문이다. 이때 에고는 상대방의 소유물을, 지식을, 능력의 가치를 깍아내리고 비난하고 무시함으로써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노력한다. 또는 에고는 전략을 바꿔, 상대방과 경쟁하는 대신 그 사람과 연결됨으로써 자신을 더 크게 만들 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들 눈에 중요한 인물로 보이는 경우에는.

 

만일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완전히 편안할 수 있다면 그때 남아있는 것이 바로 당신 자신이다. 인간 뒤의 그 순수한 '있음', 이미 규정된 어떤 것이 아니라 순수한 가능성의 장이 그것이다.

 

어떻게 하면 지금 평화로울 수 있는가? 지금 이 순간과 화해함으로써 가능하다. 지금 이 순간은 놀이가 일어나는 장이다. 삶의 놀이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일어날 수 없다. 일단 당신이 현재의 순간과 화해하면 무엇이 일어나는가 보라.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를.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어떤 삶이 당신을 통해 일어나는가를. 삶의 기술에 관한 비밀. 모든 성공과 행복의 비밀을 담고 있는 두개의 단어가 있다. "삶과 하나됨"이 그것이다. 삶과 하나가 되는 것은 지금 이 순간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때 당신은 깨닫는다. 자신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이 당신을 살고 있음을. 삶은 '춤추는 자'이고 당신이 그 '춤'이다.

 

당신이 해야할 일은 생각과 감정이 일어날 때, 그것을 자각하는 일이 전부이다. 이것은 실제로 '행위'가 아니라 깨어서 '바라봄'이다.

 

진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라. 다만 자신의 의견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중단하라. 자신의 생각과의 동일시를 내려놓으면, 그때 생각너머의 순수 존재가 자연적으로 나타난다.

 

에고는 관찰되지 않은 마음, 당신자신인 것처럼 가장하는 머릿 속 목소리일뿐 아니라, 그 머릿속 목소리가 말하는 것에 대한 몸의 반응인 점검되지 않은 감정도 에고이다.

 

만일 평화가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라면, 당신은 평화를 선택할 것이다. 만일 평화가 그 어떤 것보다 당신에게 중요하다면, 그리고 만일 당신이 자신이 하나의 '작은 나'가 아니라 '큰 영'임을 안다면 당신은 도전해 오는 사람들이나 상황과 마주쳤을 때 에고로써 반응하지 않고 완벽하게 깨어 있을 것이다. 즉각적으로 그 상황을 받으들이고, 그것과 하나가 될 것이다. 그것과 자신을 분리시키기 보다는. 그대 당신의 깨어있음으로부터 하나의 반응이 나올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자기 자신(작은 나)이 아니라 당신의 존재(의식)가 반응할 것이다. 그것은 힘이 있고, 효과적이며, 어떤 사람이나 상황도 적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어질 것이다. 곧 후하게 되고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다."

 

"있는 자는 더 받을 것이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자신에 대해 아는 것과 자신을 아는 것을 혼동하지 말라.

 

오직 내면이 고요해지고 생각의 소음이 물러날 때만이 우리는 그곳에 숨은 조화가 있고, 신성함이 있음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모든 존재가 완벽하게 자기자리를 가지고 있어서 지금의 있는 그대로 외에는 다른 모습이 있을 수 없는 하나의 더 큰 질서를 자각하게 될 것이다.

 

크리슈나무르티가 말했다. "이것이 나의 비법입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일어나는 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일에 내가 내면적으로 일치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일어나는 일'이란 이 순간의 있는 그대로를 가리킨다. 이 순간이 취하는 모습을, 내용물을 가리킨다. 그리고 존재하는 유일한 순간은 이 순간 뿐이다. 이 순간의 있는 그대로와 일치한다는 것은 일어나는 일데 대해 내면의 무저항 상태라는 뜻이다. 마음 속에서 좋다거나 나쁘다는 분류표를 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삶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행동을 더이상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정반대다. 당신의 행동이 지금 이 순간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면, 그 행동은 삶 그 자체의 지성에 의해 힘을 부여받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당신의 친구로 만드는 결정은 곧 에고의 종말을 의미한다. 에고는 결코 현재의 순간과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

 

두려움, 불안, 기대, 후회, 죄책감, 분노는 시간에 묶인 의식(에고) 상태의 기능장애들이다.

 

에고가 사라진 상태를 미래의 목표로 만든 다음 그것을 위해 노력해 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영적추구가 가면을 슨 에고의 형태가 아닌지 주의깊게 살펴보라... 자신에게 시간을 더 주는 대신, 시간을 제거하라. 자신의 의식으로부터 시간을 제거하는 것은 에고를 제거하는 일이다. 그것만이 유일하고 진정한 영적수행이다... 삶에 습관적으로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 "예"로 바뀔 때마다, 지금 이순간이 있는 그대로 일어나도록 당신이 허락할 때마다 당신은 에고 뿐아니라 시간을 사라지게 한다.

 

무저항은 우주의 가장 큰 힘으로가는 열쇠다. 그것을 통해 의식(영)은 형상의 감옥으로부터 해방된다.

 

누군가 당신을 비난하고 당신 탓으로 돌리거나 험담을 할 때, 즉각적으로 응수하거나 자신을 방어하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 자신의 이미지가 손상되도록 허용하고 그것이 당신 내면 깊은 곳에서 어떤 느낌인지 지켜보라. 몇 초 동안은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마치 자신의 크기가 줄어든 것처럼. 그러다가 당신은 강렬하게 살아있음을 느끼는 하나의 내면 공간을 자각할 지도 모른다. 당신은 전혀 손상당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당신은 확장되었다.

 

만일 자신이 특별히 아무 존재도 아닌 것에 만족하고 앞으로 나서지 않는데 만족한다면, 당신은 우주의 힘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에고에게 허약함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유일하게 진정한 힘이다.

 

도덕경에 "골짜기가 되라"는 말이 있다. 이런 방식으로 당신은 전체성을 회복하게 되고 '천하의 모든 것이 당신에게 흘러들어올 것이다'. 예수도 이야기 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누구나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다."

 

이따금 모든 사람이 의견을 내세울 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자제하고 그때 그것이 어떤 느낌인가를 고나찰하는 것이 여기에 포함된다.

 

부처를 뜻하는 佛은 사람인(人)에 아닐 불(弗)을 합한 자이다.

있음과 없음, 형상과 형상의 거부, 형상의 거부는 형상이 당신의 존재가 아니라는 깨달음이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모든 형상과 모습들의 무상함, 무상함의 인식은 무집착으로 인도한다.

 

진정한 자유와 깨달음에 이르는 길. 무저항, 무판단, 무집착

 

나는 내 자신으 생각으로 인해 절대로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다.(기적 수업)

 

모든 창조성은 내면공간으로부터 나온다. 일단 그 창조행위가 일어나고 무엇인가 형상으로 나타나면, '나' 또는 '나의 것'이라는 개념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자신이 성취한 것에 대해 공로를 주장하면 에고가 되돌아온 것이고 그 내면공간은 흐려진다.

 

호흡을 자각하는 일은 당신을 지금 이 순간 속으로 데려온다.

 

형상으로서의 자신을 더이상 강조하지 않을때 당신을 통해 거대한 힘이 세상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침묵은 신이 말하는 언어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은 나쁜 번역이다."

 

불확실성을 받아들일 수 없으면, 그것은 두려움으로 변한다. 만약 불확실성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으면, 그것은 더 커진 생명력, 깨어있음, 창조성으로 바뀐다.

 

깨어있는 행동의 3가지 양상 : 받아들임, 즐거움, 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