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사람을 만나러 갈 때는 선물을 준비하게 되었다. 특히 오랜만에 만나는 경우에는 내 손에 반드시 뭔가 들여 있었다. 선물. 참 묘한 놈이다. 받으면 무조건 좋다. 지금까지 받은 선물은 어떤 것이건 싫은 적이 한번도 없다. 내가 그동안 어떤 선물을 받았더라?
- 몇 년 만에 만난 친구가 백화점에 들렀다가 샀다는 립클로즈
- 긴 휴가를 떠나는 후배사원을 위해 책꽂이를 훍어 골라주신 책
- 먼 길 가는데 출출할 때 먹으라며 밤늦게까지 직접 구웠다는 홈메이드빵
- 오랜만에 친정을 다녀가는 딸에게 직접 달인 거라며 오렌지쥬스병에 가득 담아주시는 홍삼쥬스
- 매일 보는 얼굴이었지만 자주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던 동료가 새로운 인생을 살러 나가는 또 다른 동료에게 몸에 좋은 유기농이라며 건네주는 고마운 바디로션
- 사은품으로 받았는데 자기는 별로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건네주는 와인
- 맛있는 점심도 사주신 팀장님이 커피 마시자며 카페에 들어가 몰래 계산한 후 건네주는 쿠키
- 장식용 인형 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우리집에도 잘 어울릴 것 같다며 들고 온 장식용 인형
-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이라서 차 마시는 거 좋아할 것 같다며 카모마일 티와 함께 가져오신 찻잔세트
- 무조건 소설가가 되겠다는 마누라를 위한 남편의 노트북 컴퓨터
- 아침에 먹으려고 샀는데 아직 못 먹었다며 오후 세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도너츠 반쪽을 딱 잘라 큰 쪽을 내게 건네주는 후배의 딸기 페스츄리
- 집에서 자라는 수세미를 배와 꿀, 호박을 넣어 팍팍 삶아 원액으로 만들어 레토르트 포장에 담아 일년내내 하루에 한봉씩 먹는 거라면서 자기 몫을 내게 양보하는 수세미즙
- 신혼여행 다녀왔다며 손바닥 두개를 쫙 펼쳐야 올려놓을 수 있는 만큼 컸던 약식
- 월급을 받았다면서 쥐꼬리만한 월급을 조각내어 내게 저녁을 사겠다는 인턴의 한 턱
- 큰 수술 잘 받아 다행이라며 유기농 부페에서 저녁도 사주고 집까지 바래다 주는 후배부부의 마음
- 병문안 오면서 이게 제일 좋을 것 같아서 사왔다는 '매일 아침 나눠먹던 맛좋은 샌드위치'
- 커피보다는 티가 건강에 좋을 것 같다며 한시간 넘게 동네를 헤매고 헤매서 힘들여 사온 향기로운 티
- 마트에 갈 때마다 쿠킹코너에서 만지작 거리다가 사지 않는 계량컵과 짤주머니를 생일선물이라며 짠 내놓는 남편의 사랑
- 아마추어의 그림인데 자기가 볼 때는 멋진 것 같아서 샀다며 고무줄에 둘둘 말아 건네주는 난생처음 받은 그림
- 멋진 유화는 있는데 액자가 없다는 친구의 말에 그림값보다 액자값이 비싸겠다며 쿠사리를 주면서도 어느날인가 낑낑매며 들고 들어온 액자
- 뭐든 고쳐쓰는 것을 좋아하는 낚시꾼이 삼년 졸라서 받아낸 전동공구
- 친구의 와이프 생일을 굳이 챙기겠다며 회사 앞까지 와서 전해준 스카프
- 속초 오는 길에 양평에 들러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포장해 왔다며 냉동실에 보관하라던 고기완자
- 이제 속초에 와서 무슨 일이든 술~술 풀리라며 부동산 중개 아저씨가 주신 프리미엄 두루마리 휴지
잠깐 생각해 봐도 내가 그동안 받은 선물들이 너무도 많고 그 선물들 모두 나를 참 오랫동안 행복하게 해주었다. 이렇게 선물이 주는 행복감이 나로 하여금 선물을 하게 만들었을 것이고, 내 선물을 받은 사람들도 내가 건넨 선물 때문에 조금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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