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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댁 서재

4천원 인생이라니...


한겨레 출판사에서 나온 <4천원 인생>이라는 책을 읽었다. "울면서 읽었다"는 표지말이 있었지만 큰 감흥은 없이 본문부터 읽기 시작했다. 신문기자 4명이 시급 4천원 수준의 비정규직 일을 몸소 체험한 것에 대해 쓴 책이다. 아주 오랜 만에 대학때 보았던 대자보를 보는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떠할지 모르지만 책을 읽은 소감은 썩 좋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불평했던 일상이 구름 한 점 없는 파란하늘이라는 강요아닌 강요를 받는 느낌이었고 일상 속에서 숱하게 부딪치는 아마도 4천원 인생들에 대해서는 이유없는 죄책감이 심하게 발동했기 때문이다.

소위 식당 아줌마로서 2개의 식당을 체험했던 여기자의 글은 내가 여자라서 그런지 가장 절실하고 아팠다. 각양각색의 이유로 식당 아줌마로 전락하였고 그곳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갔던 모든 식당들을 떠올려 보았다. 장사가 잘 안되는 식당에 갔을 때는 아주머니들이 TV도 보고 안쪽 방에서 자는 모습들도 많이 보았었는데. 암튼 기자가 체험한 식당의 주인장들은 정말 나쁜 사람이다 싶다.

마트 정육코너에서 한달 동안 체험한 남자 기자의 글을 읽고는 요즘 자주 이용하는 E마트를 줄창 떠올렸다. 정말 나는 시식코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 적이 없을까? 그런 것 같긴 하다. 시식코너 앞에서는 "음식"에 시선을 꽂는 것이 상식이 아닐까. 그건 맞는 것 같다, 그 누구도 앉아 있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사실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좀 불만이 있긴 했다. 나 조차도 마트 안에서 잠시라도 앉아 낚시코너를 확인해야만 하는 낚시꾼을 기다릴 곳이 없었으니까. 계산대에 있는 사람들도 의자는 있지만 걸터 앉아 있는 사람도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는 TV를 통해서도 간접적으로나마 본 적이 있어서 내가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실은 빡빡하고 안타까웠지만 내 일은 결코 아니겠다 싶긴 하다. 누구든 모두 자신에게 적용을 해봐야 그 충격을 가늠할 수 있지 않나.

마지막 공장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 내 첫 직장이었던 금성사. 라인체험을 한답시고 공장에 몇시간 있었던 적이 있다. 물론 라인에 직접 투입은 되지 않았다. 불량률 Zero가 목표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때 본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여공들이 모두 손목에 플라스틱 비슷한 팔찌를 하고 있었던 것. 교육인솔자에게 물으니, 그때 만들고 있던 제품이 VCR이었는데, 정전기가 발생하면 제품에 손상이 가기 때문에 모두 팔찌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 팔찌가 사람한테는 해롭지 않았는지 그런 생각도 잠깐 해본다.

이 책을 읽는 나의 모습은 내내 4천원 인생은 되지 말아야지 였다. 너무 소극적인 포지션이라는 것을 안다. 뭔가 이들을 위해 나부터라도 이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난소공>에서도 말하고 이 책에서도 말하는 "뫼비우스의 띠"의 영원한 루핑을 끊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일 것 같긴 한데. 난 이 책을 읽는 반나절 내내 그러지 않았다. 이 책을 드는 순간부터 손에서 거의 내려놓지 않고 단숨에 읽었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몰랐다, 내 이웃에 4천원 인생의 삶을.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식당에서 반찬을 더 달라 하면서 그 사람들의 일상이나 아픔을.

모든 4천원 인생들이 이렇게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확신하다. 그리고 결단코! 그래야 한다.

<4천원 인생>을 읽은 내 소감이 "앞으로는 식당 아줌마에게 반찬을 시키지 않겠어요"나 "마트에 가면 점원들의 얼굴을 봐주겠어요"는 결코 아니다. 다면 그들이 자신이 만들었건 자신에게 만들어졌건 하는 그 뫼비우스의 띠를 CUT!!!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모색하기를 기원한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르던 쟁반을 내려놓고, 라인 위에 흘러가는 기계들을 잠시 외면하고, 생각!!이라는 것을 했으면 좋겠다. 한두번의 생각으로는 어떤 결론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물론이다. 계속 생각을 했으면 한다. 생각만이 뫼비우스의 띠의 루핑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누구도 대신 내가 이 루핑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줄 수도 도와주지도 않을 것이다. 

p.s. 언젠가 아주 쉽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세상만사 다 지긋지긋해지면 직장이고 일이고 다 때려치우고 그동안 모아둔 돈 절약해 쓰면 살겠다고. 혹시 돈이 부족할 것 같으면 마트에 캐셔라도 하면 되지 않겠냐고. 낚시꾼은 마트에서 짐을 나르겠다 했다. 오늘부로 취소다!! 이 책을 읽으니 차라리 직장을 몇 년 더 다니고 좀더 절약해 살아야지 4천원 인생은 못하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