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더 가벼워지기를 바라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다.
"Taking me to truth undoing the Ego"
Some lines to keep in mind as long as I can.
나는 내가 보는 것에 책임이 있다.
나는 내가 경험하는 감정을 선택하고, 내가 이룰 목표를 정한다.
또 나에게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일은 내가 청한 것이고, 나는 내가 청한 대로 받는다.
나는 온 우주에서 세가지 일만을 봅니다 - 나의 일, 남의 일, 하느님의 일.
내게는 '하느님'이라는 말이 '현실'을 뜻합니다. 현실은 하느님입니다. 현실은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의 통제, 당신의 통제, 모든 사람의 통제를 벗어난 일은 무엇이든 하느님의 일이라 부릅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는 까닭은 대부분 마음이 자기의 일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넌 직장을 구해야 해,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 너는 시간에 맞춰 와야 해, 넌 몸을 좀 보살필 필요가 있어'라고 생각할 때 나는 남의 일에 간섭하고 있습니다. 지진, 홍수, 전쟁, 혹은 내가 언제 죽을 것인지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면, 나는 하느님의 일에 간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으로 남의 일이나 하느님의 일에 간섭하고 있을 때 분리가 일어납니다. 당신이 당신의 삶을 살고 있고, 나도 마음으로 당신의 삶을 살고 있다면, 여기에 있는 나의 삶은 누가 살까요?
알지 못함을 깨끗이 인정하면 두려움과 저항에서 놓여난다. 두려움과 저항은 알아야만 한다는 에고 욕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지 못한다고 인정하는 것은 곧 통합된 의지에게 우리를 깨워달라고, 상황을 분명히 깨닫게 해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우리가 두렵거나 죄책감을 느끼거나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거나 화가 났다고 해보자. 이때 이 감정들을 판단없이 그저 관찰만 하면서 자기가 알지 못함을 순순히 인정한다면 그것은 곧 통합된 의지로 하여금 그 감정들을 맡아달라고 초대하는 것이다. 에고의 자리에는 엄청난 죄의식이 산처럼 쌓여 있어서 우리는 그 죄의식의 크기만큼 판단하고 비난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죄의식의 짐을 덜어보려는 것이다. 이 끈질긴 위협감은 바로 우리가 죄인이라는 에고의 고집스러운 믿음, 따라서 제 의지로 통제해야만 한다는 에고의 집착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삶 안에서 부족함을 인식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여정을 마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요 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지금, 깨어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만일 우리가 온 가슴과 영혼을 쏟아 사랑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하고, 여기 지구 위에서 최상의 현실을 의식적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우리가 이루고자 태어난 목적과 함께 우리의 정체성을 '틀림없이'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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