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은 책이다.
아담 이후로 인간은 참 많은 경계를 만들고 살고 있다고 한다. 페르소나(Persona)와 그림자. 이 둘이 합쳐진 에고(Ego, 페르스나 + 그림자)와 우리의 몸. 그리고 또 이 둘이 합쳐진 켄타우로스(그리스 신화의 半人半馬, 에고 + 몸)와 몸 밖의 환경. 이러한 경계가 모두 사라지만 내가 너가 되고 너가 내가 되는 진정한 합일(合一)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나와 너, 안과 밖, 이쪽과 저쪽, 참과 거짓, 선과 악 등과 같이 참 많은 경계를 만들어 둘로 쪼개고 셋으로 쪼개고 또 그 쪼개진 사이에서 전쟁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페르소나와 그림자로 쪼개진 우리 마음도 하나, 에고와 우리 몸도 하나, 또 우리 몸과 우리가 사는 몸 밖 환경도 결국은 하나라고 한다. 이런 일여(一如)의 마음으로 살면 갈등도 없고 경쟁도 없고 전쟁도 사라진다 한다.
진짜?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두번 연거푸 읽는데 갑자기 든 생각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때, 한참 열을 올리며 공부, 공부만 했던 나는 같은 반 아이 중 하나가 코에서 핏덩이를 쏟아내는 순간에도 흘깃 한번 보기만 하고 책에만 집중했었다. 그런 내 모양새가 미웠던지 반 아이 중 두 명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요즘 뉴스에 나오는 것보다는 무지하게 양호한 수준이었지만, 내가 공부를 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타나 내 책상을 흔들어 댔다. 책을 못보게 하자는 심산이었던지 싶다. 그때는 그 아이들이 참 많이 미웠다. 지금도 누가 내 책상을 흔들어 대면 싫을 것 같긴 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의 행동이 참으로 몰인정하고 한심했지만, 그 아이들도 철이 한참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갑자기 들었다는 생각이란 것은 '그때 내가 그 아이들을 한번 안아줬으면 어땠을까?'하는 거다. 그 아이들은 나를 '적'으로 생각하고 나를 괴롭혔고, 당시 나는 어떤 사정이 있건 간에 학교에서 떠드는 아이들은 모두 나의 '적'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도 그 아이들도 모두 경계를 만들어 전쟁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내가 그 아이들을 안아 당시 나와 그 아이들 사이에 있던 경계를 없앴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아이들은 지금 뭐하고 살까? 그런데, 내가 그때로 돌아가면 지금의 이 안아주고 싶은 느낌을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라도 기억해야 겠다. 미운 사람들이 혹시나 생겨 나와 그들 사이에 경계를 만들게 되면 그들을 안아버려야 겠다. Hug. 이제서야 왜 Hug 운동을 하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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