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지나간다(지션린 지음/허유영옮김)>의 서문을 조금 전부터 읽기 시작했다. 나의 고민을 어찌 알고 이런 책이 오늘 내 손에 들어왔을까 하는 생각에서, 서문 전문을 이곳에 올린다. 한 자 한 자 타이핑하면서 마음 속에 꼭꼭 심어본다.
프롤로그
늘 궁금한 단어, 인생
그 어떤 것보다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이 인생이 아닐까 싶다. 언뜻 들으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쨌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더욱이 나에겐 인생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미 아흔 해가 넘도록 하루하루, 한 순간 한 순간 인생과 대면하며 살았으니 말이다. 나처럼 나이 든 노인이 인생에 대해 한담을 나누는 것이 뭐 그리 어렵겠는가?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파고들어 가면 곧 한 가지 의문이 날 기다리고 있다. 바로 '인생은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나도 아직 찾지 못했다.
아니, 해답을 찾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 세상 수많은 사람을 만나오면서 여태껏 이 문제에 시원스런 대답을 내놓은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철학가들의 앞에 놓인 가장 크고도 어려운 명제는 바로 인생이었다.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또 인생의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지금까지 수많은 철학가들이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고뇌했고, 또 다양한 견해를 피력했다. 그러나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사실 나조차 이해하기 어렵다. 이야기하면 할수록 엉킨 실타래처럼 점점 복잡해지고, 머릿속은 오리무중이 되어 간다.
철학가에게 철학이란 그 무엇보다도 숭고한 가치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나는 그들을 존경하지 않는다. 그들의 철학은 나 같은 범인들에게는 그 가장자리에도 닿을 수 없는 만큼 먼 곳에 있다. 그들의 철학은 신성한 신전에 홀로 앉아, 눈이 부셔 도저히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고상한 광채를 발하고 있다.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은 배불리 먹고 한가로울 때에나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늘 우리 '사람(人)'의 '생명(生)'은 절대적으로 수동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자신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날지 미리 계획을 세운 뒤에 태어나, 그 계획을 착착 실천하며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결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태어나고, 아무것도 모른 채 성장하며, 때로는 영문도 모른 채 요절하기도 한다. 물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장수하는 사람도 있다. 나처럼 말이다.
생명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죽음이다. 죽음 앞에서도 우리는 역시 수동적이다. 죽음을 향해 주도권을 행사하는 경우는 오로지 하나뿐이다. 바로 자살이다. 그러나 이 주도권마저도 아무렇게나 사용할 수는 없다.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결코 사용할 수 없는 권리다.
그런데 내가 이토록 인생에 대해서 수동적이고 모호하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설마 인생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겠는가. 그건 절대로 아니다. 난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이야기할 뿐이다.
난 우리가 이렇게 수동적이고 어리둥절한 인생을 살면서도 여전히 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을 든든히 먹은 다음에 노래방에서 목청껏 노래를 부른 후, 또는 골프장에서 후련한 샷을 날린 후, 자신에게 '나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설마 삶이 멋대로 즐기기 위해 있겠는가? 아니면 사람이 설마 추위와 굶주림을 참기 위해 태어났겠는가? 자신에게 이런 간단한 문제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머릿 속이 개운해지고 눈앞이 밝아지며, 앞을 가리고 있던 희뿌연 안개가 조금은 걷힐 것이다. 믿지 못하겠다면 한번 해보시라.
※ 프롤로그를 밖에서 올리고 집으로 오는 동안 이 책의 1/3을 읽어버렸다. 맛있는 케잌을 야금야금 아끼며 먹었지만 어느새 반이 없어지고 또 어느새 빈 접시만 남는 것처럼, 아직 읽지 않은 부분이 줄어들수록 아쉽고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초반부의 글 중에 보면 이런 시가 있다.
늙으나 젊으나 죽기는 매한가지
어짊과 어리석음을 가늠할 수 없네.
취하면 잊을 수 있다 하나
오히려 늙음을 재촉하는 것!
선한 일을 이루면 기쁘다 하나
누가 있어 그대를 알 것인가.
너무 깊게 생각하면 도리어 삶이 다치게 되니
마땅히 대자연의 운에 맡겨두어야지.
커다란 조화의 물결 속에서
기뻐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게나.
끝내야 할 곳에서 끝내버리고
다시는 혼자 깊은 생각 마시게.
도연명의 詩 신석(神釋)인데, 이시의 마지막 구절이 지션린의 좌우명이란다. 위 싯구를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오는 동안 읽고 또 읽어 외워버렸다. 내 남은 인생의 좌우명으로 해도 좋을 듯. 아직 이른가?
<다 지나간다> 이 책을 하루만에 읽어냈다. 요즘 책을 많이 읽어서 독서에 가속도가 붙기도 했지만, 석학이 쓴 인생에 대한 책인데도, 읽는 내내 '참 쉽고 공감된다'는 느낌이었다.
올해로 99세라고 하는 작가 지셴린은 중국 베이징대학의 교수이고,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학내정치투쟁에 휘말려 '우붕'이라고 곳에서 수감생활을 하는 등 심한 고초를 겪기도 한 분이다. 몇년전 SBS다큐멘터리 <세계명문대학 - 다이하드, 죽도록 공부하기 편>의 주인공이었다는 지션린.
이 분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은 이 분이 몇년 동안 쓴 글들을 엮은 산문집이라고 하니, 아마도 이런 류의 책이 이 분의 전공분야는 아닐 듯. 요즘 내가 인생과 삶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인지, 이 책에서 말하는 '인생, 삶, 죽음, 나이먹음 그리고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쓰기'에 대한 생각이 내 마음을 좀 편안하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이런 석학도 심한 가려움증 끝에는 죽음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이 정도로 훌륭하다는 분들도 철학자들의 이야기는 어려워 모르겠다고 한다. 먹기 위해서 사느냐 살기 위해서 먹느냐와 같은 시시한 고민을 결코 하지 않았을 것 같은 분이 이에 대한 결론을 자주 이야기 하는 걸 보면 고민은 아니더라도 이와 같은 생각을 여러 번 했던 것 같다 하며 안도가 되기도 하다.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책을 읽는 것은 행운이고 행복이다.
이 책을 만나서 불편했던 마음이 좀 편안해 지고, 침침했던 마음이 좀 정돈되는 것 같다.
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 갑자기 이 문구가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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