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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댁 서재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철스님께서 이런 말을 하셨다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아주 예전에 이 말을 듣고는, "그래서?" 뭐 이런 정도밖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느끼는 것도 별로 없었고, 도대체 뭘 말하려고 하는지는 생각조차 못했죠. 그저 대단한 분의 말씀이니 뭔가 큰 뜻이 있겠지 정도만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혹시 이런 뜻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 비슷한 것이 있었습니다.

 

어제 아침 청소를 하다가 안방 붙박이장 밑으로 손바닥 두개만큼의 물이 흘러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머나'하는 놀람과 함께이것이 의미하는 많은 일들(벽에 물이 스몄을 것이고, 이것에 벽에 곰팡이를 만들 것이고, 이것 때문에 장속 옷이 망가질 수도 있고, 그러면 빨래나 드라이를 또 해야겠군 등)이 순식간에 떠오르면서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걸레를 가지러 방을 나서는 순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건 그냥 물이잖아. 그냥 물을 보고도 내가 걱정근심을 했을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를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물을 그냥 물로 받아들이면 걱정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는데, 물을 곰팡이, 옷을 망가뜨리는 것, 옷이 망가지면 추가로 들어갈 수고와 비용으로 확장을 하기 시작하니 걱정이 되는 거였습니다.

 

바닥의 물기를 걸레로 싹싹 닥고 붙박이장 바닥틈새에 신문지를 길게 펴서 넣었습니다. 물이 더 있다면 신문지가 해결하겠죠. 이런 일들을 하면서 '이건 그냥 물이다'라고 되뇌였습니다. 그냥 물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랬더니 걱정이 되지 않더라고요.

 

성철스님께서 진짜 어떤 뜻으로 이 말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오늘 내가 느낀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많은 경우 대상을 그대로 보지 않고 내멋대로 꾸미고 상상하고 부풀리고 왜곡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부터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보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세상이 좀더 맑게 보입니다. 붙박이장 앞 물에게 감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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