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 물에 빠졌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물에 빠친거죠. 스마트폰은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설겆이통 앞에 있는 창문턱에 스마트폰을 올려놓은 제 잘못입니다.
스마트폰을 새워놓는 도구(꼭 문어 대가리 처럼 생긴 것으로 공기를 압축해서 스마트폰 뒷면에 붙이면 이게 다리 역할을 해서 스마트폰을 서게 합니다), 요것의 공기 압축 부위에 힘이 빠지면서 스마트폰과 분리되는 순간, 설겆이통으로 퐁당했던 겁니다.
토요일에도 일하러 간 낚시꾼. 낚시꾼 없는 시간을 빨리 보내는 방법은 집안일을 찾아 하는 겁니다. 일거리를 찾다가 버터통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고 작은 통으로 옮겨담고 나서 그 버터통을 씻겠다고 설겆이를 하고 있던 참이었지요. 모든 불상사는 자연스럽지 않은 곳에서 시작됩니다.
그 버터통을 그대로 뒀더라도 냉장고는 널널했습니다. 버터통을 씻지 않고 재활용수거함에 넣어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때 그 버터통이 제 눈에 발견되었을까요. 일이 일어나려니까 말이지요.
2달전까지는 스마트폰 없어도 산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남들이 다 하는거 안하는 자유! 뭐 이런 거였죠. 그런데 스마트폰이 생겼고, 해외출장 간 남편과 이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전화, 카톡, 페북까지 정말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즐겼습니다. 스마트폰의 진가를 체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스마트폰이 물에 빠진 겁니다. 핸드폰이 물에 빠지면? 무조건 전원을 끈다. 그리고 말린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물에 빠져서도 소리를 내고 있는 스마트폰, 물에서 건져내도 소리를 내고 있는 스마트폰을 보면서 당황을 하여 전원버튼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끄려고 전원버튼을 누른 것이었는데, 이게 다시 켜는 꼴이 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잠시동안 정신이 없었고,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배터리를 뺐습니다.
내장을 드러내고 누워있는 스마트폰을 보고 있자니, 볼트를 빼서 기판을 열어놓으면 더 빨리 마르지 않을까, 드라이어로 바람을 좀 불어넣어볼까, 별별 생각이 다 났습니다. 정말 한참동안 스마트폰과 내가 하나가 되어서 서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다른 생각은 하나도 나지 않았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1초도 안되서 바로 꺼냈는데, 괜찮지 않을까? 배터리를 넣고 전원을 켜보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조금 있으려니 또 배터리를 손에 쥐고 있는 제 모습이 보입니다. 2~3일은 제대로 말려야 한다고 낚시꾼이 말했는데, 1시간도 못 참고 있는 저를 보니 어이가 없습니다.
예전에 마쉬멜로우 이야기를 읽은 것이 기억납니다. 어린 아이에게 마쉬멜로우를 주고, 지금 먹지 않고 30분만 참으면 마쉬멜로우를 2배로 주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참지 못하는 아이가 많았다고 합니다. 나는 참을 수 있어 하며 자만했던 내가 지금 스마트폰 배터리를 들고 안절부절 못합니다. 난 마쉬멜로우도 참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았냈습니다. 새벽 2시가 넘어 들어온 낚시꾼에서 스마트폰 사고 경위를 다시 설명하고 우울했다고 했습니다. 그깟 스마트폰이 뭔데 우울해 하냐며 위로해 주는 낚시꾼! 다음날 아침. 눈을 뜬 낚시꾼이 배터리를 스마트폰에 넣고 전원을 켭니다. 어? 2~3일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나의 말에 낚시꾼이 말합니다. 흐흐흐, 물 잡히기 전에 물고기 넣는 거랑 같은 거지.
해수어를 어항에서 키우려면 해수염을 넣고 이런 저런 약품도 넣고 스키머도 돌리고 등등을 하면서 몇 일동안 물고기가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을 물 잡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물고기가 노는 모습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덜 잡힌 물에 물고기를 넣는 거죠.
물 잡히기 전에 물고기를 넣으면 어떻게 되냐고 물으니까 "물고기 다 죽지" 이럽니다. 참 나. 다행히 배터리 넣고 전원버튼 켜니 몇가지 동작만 빼고는 잘 작동합니다. 에휴. 낚시꾼이 말합니다. 하루 더 있다가 켜보면 더 좋아질거라고요.
모든 기계는 망가질 수 있습니다. 사람이 늙듯이 기계도 늙을 수 있지요. 결혼 때 장만한 가전제품들이 하나둘씩 늙어갑니다. 냉장고는 발차기의 횟수와 강도가 늘어가고 있고, 청소기는 처음 2~3분은 비명을 지릅니다. 그래도 아직 잘 돌아갑니다. 같이 늙어가는 거죠. 그런데 제 잘못이나 부주의로 기계가 망가지면 고장을 일으킨 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자책이 시작되는 거죠. 스스로와 함께 실갱이를 하고 싸움을 하게 됩니다.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낚시꾼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자신을 용서하라고 합니다. 자신조차도 용서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세상을 잘 살 수 없다고. 용서라...
p.s. 내일 서비스센터에 가서 스마트폰 점검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 김에 스마트폰을 물에 빠친 저도 점검 받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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