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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댁 서재

대망(14권)


어떤 의미에서 싸움의 승패란 전략, 전술 이외에도 인간 생활의 모든 면을 가감해서 얻어지는 더할나위 없이 미묘한 계산 후에 나타나는 답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에야스의 계산과 히데노부의 계산은 차원이 다른 큰 차이가 있었다. 히데노부에게는 눈 앞에 닥쳐오는 적은 보이지만 그 적이 무엇에 의지되고 무엇에 선동되어 나왔는가를 간파할 능력은 전혀 없었다.(14권 22페이지)

그는, 인간이란 미끼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냉엄하게 계산하여 진심으로 상대를 존중한 일이 없었던 것을 깨달았다. (중량) 곰곰히 생각할 때 그 몇 명 밖에 안되는 존경하고 있는 사람들만이 지금도 자기의 참다운 의지가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것을 뒤집어서 말하면 그가 믿고 있던 사람은 그를 돕고, 그가 마음 속에서 업신여겼던 사람은 모조리 그를 배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장점이 있다. 거기에 눈이 미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단점과 자기의 장점을 비겨 보는데서 상대에게 불신과 천시를 보내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14권 68~69페이지, 미쓰나리)

결국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 무엇인가 하나씩 배워가는 것인가 보다. (14권 72페이지, 미쓰나리)

(모든 것은 신불에게 맡겨두고 있다!) 人事는 다한 것이다. 그리고 인사 이상의 것이 크게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다께다 신겐은 미까다가하라에서 마음껏 자기가 이긴 다음에 후에후끼 강 기슭에서 왜 쓰러지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그러한 일은 다른 사람에게만 한해서 일어날 리가 없고 언젠가 한 번은 내 몸에도 찾아들 것이다. (찾아들 때는 찾아드는 식에 따라 최선을 다할 것) (14권 77~78페이지, 전장에서 몸에 이상을 느낀 이에야스의 생각)

다다요시님은 대장이십니다. 대장은 홀로 앞장서서 말을 모는 이상, 언제나 아군이 보고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 각오를 충분히 하시고 앞장 서신 것으로 알았기 때문에 만류했습니다. (14권 155페이지, 전장에서 적군에게 깔려있는 다다요시를 구해주려는 진에몸을 말린 고구리 다이로꾸가 왜 진에몬을 말렸는지에 대한 대답)
뒤얽혀 깔린 것이 다다요시라고 알았을 그대도 가슴이 덜컥했을 거다. 돕고 싶었겠지. 그러나 도와서는 뒤날을 위해 좋지 않다. 오늘은 첫 출진. 그대들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다다요시는 싸움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모르고 말겠지.
과실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싸움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고 다시 다음 싸움터에 나간다면 반드시 容兵을 그르쳐 많은 부하들에게 우는 꼴을 보이게 되리라. 아니 다만 그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야. 그 과오가 전 군사의 승패를 판가름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요컨데 싸움의 실패를 잘 알아보고서 분별이 생기도록 해야 되는 거야. 그대의 오늘 태도는 진실로 다다요시의 몸을 생각했던 것. 훌륭했다.
이에야스는 오른손 손가락 사이가 으스러진 자기 아들의 상처에서 거칠게 헝겊을 떼냈다. 그리고 검게 말라 붙은 응결된 피 사이에서 새로이 또 쏟아나는 보리수 열매같은 새빨간 핏방울을 보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입술을 대어 빨아낸 다음 그 자리에 고약을 발랐다. "내 아들이 훌륭했던 것이 아니라 그대가 잘 길러줬기 때문이야" 그 한마디는 나오마사 보다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가슴에 짜릿하게 울렸다. (14권 156~157페이지, 이에야스)

이에야스의 비꼬는 말을 듣고 스께다다 보다도 가즈야끼 쪽이 더 얼굴을 붉어져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수치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와의 차이가 너무나 뚜렷해서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였다. (신분은 어째서 이렇게도 사람마다 짐을 지우는데 차별을 두셨을까...) (14권 164~165페이지, 이에야스의 생각)

싸움에 이겼다는 것은 이를테면 사업의 중간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뒤의 경영에 있었다. 승리자의 통제와 패자의 처벌에 영토 문제가 얼크러져 있어 한 걸음만 잘못 디디면 곧 다음 싸움의 싹을 낳게 된다. (14권 224페이지, 이에야스)

지지 않으려는 성품에다 고집이 세고 외로와 하며 꿈이 많다. 게다가 또 한가지 잘 닮은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남을 미워하지 못하고, 만나는 사람, 보는 사람에게 마냥 끌리는 것이었다. (14권 239페이지, 오소데를 보면 고다이의 생각)

만약 여기서 아들을 낳게 된다면 또 하나의 짐이 늘어난다. 그 짐이 어떠한 짐이 되는가는 다이꼬오와 그 아들의 관계에서 잘 알고 있었다. 건강한 자식이 반드시 영리하다고만은 할 수 없고, 허약한 자식이 결코 어리석다고만도 할 수 없다. 사람의 어버이로서 허락되어 있는 것은 그 자식에게 희망을 걸고 오직 마음이 놓이지 않아 속을 태우는 것 뿐인가 보다.(14권 276페이지, 59세에 아들을 갖게된 이에야스)

가쓰모도는 지금까지도 늘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인생의 행복은 반하는 데에 있는 것이지, 사랑 받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요도기미님은 아마도 평생을 두고 그 행복한 진미를 맛볼 수 없는 분일까고...(14권 282페이지, 가쓰모도)

이 세상은 결코 한 집안이나 그 친척의 야심이나 망령된 고집으로 좌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맡을 만큼 실력을 가진 사람이 잠시 맡을 뿐이라는 것이 분명하다.(14권 283페이지, 가쓰모도가 이에야스의 말을 듣고)

정의란 것이 그대가 찾고 있는 것처럼 깨끗이 닦인 구슬 그대로 반짝이는 것이라면 고생하며 찾을 자는 하나도 없어. 정의 또한 항상 진흙 속에 있지. 먹느냐 먹히느냐, 각오를 단단히 하고 구술을 찾아라. 알겠느냐? (14권 320페이지, 이에야스)

인간은 말이다. 토끼새끼를 잡는데도 전력을 다해서 잡는다는 사자의 마음을 잊기 쉬운 거야. 그런데 그걸 잊는다면 하루도 주인 자리에 앉을 수 없는 것. 몇만명, 몇십만명의 가신이 있더라도 그 하나 하나와 항상 먹느냐 먹히느냐의 대결인 거야. 내 편에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어 봐라. 그만큼 곧 그 자들에게 신뢰를 잃고 멸시를 받게 되지. 대개 가문을 멸망시키는 자는 가신이라 생각해서 방심하기 때문이지. 알겠나? 열 사람의 가신 중에 한두 사람이 주인을 깔보기 시작하면, 그건 멸망의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해야만 해. 이것이 세 사람이나 다섯이 되면 벌써 그 누구도 막아낼 수 없어. 그런 의미로서도 항상 처음의 한두 사람에게 멸시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한 거야. 말로서가 아니지. 눈으로 노려보는 것도 아니지.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것이 인간 세계의 참모습이라고 뱃 속에 새겨 넣고서 깔보이지 않게끔 엄격하게 내 몸을 닦아 두어야 하는 거야. (14권 320~321페이지, 이에야스)

주인 쪽에서 본다면 가신을 잘 골라야 되는 것. 헌데 섬기는 쪽에서 본다면 참으로 주인을 잘 고르지 못하면 야시로 같은 불쌍한 일이 생기게 될 지도 모르는 거야.(14권 323페이지, 이에야스)

그대와 다다찌까는 배우가 다르지. 그대는 참으로 재치빠른 자이지만 주연은 안돼. 다다찌까의 좋은 조연이 되도록. 알겠느냐? 주연을 능가해서 무대의 조화를 깨면 못 써. (14권 325페이지, 이에야스가 다다찌까의 가신으로 온 나가야쓰에게 한 말)

내가 그대에게 등뼈를 하나 넣어주마. 그러므로 그대는 진지하게 시대의 흐름에 등뼈를 넣어가야만 해. 싸움터에서의 칼 싸움 이외에 어떠한 충성이 평화로운 세상에 필요한가를... 그러나 잊어선 안돼. 아직 그 평화시대가 온 것은  아니야. 우리들이 모두 힘을 합해서 그것을 만들기 시작한 때라는 것을 말한다. (14권 326페이지, 이에야스가 나가나쓰에게)

마음속의 자존심은 세상의 눈과 다르다. (14권 362페이지, 이에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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