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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댁 서재

#54 : 눈으로 하는 작별


눈으로 하는 작별
산문
룽잉타이
★★★★★

일상에 대한 잔잔한 이 이야기를 읽으면 나도 모르게 룽잉타이가 되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같다. 마음이 평화로와 진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해해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져 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 우리는 골목길 이쪽 끝에 서서, 골목길 저쪽 끝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본다. 그 뒷모습은 당신에게 속삭인다. 이제 따라올 필요 없다고.

이 책을 읽고 또 읽어야 할 책이 늘었다. <금강경>, <능엄경>, <무상경>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 태곳적부터 나고 죽음이 서로 계속됨은, 모두 참 마음의 맑고 밝은 본체는 알지 못하고 허망한 생각만 갖는 탓이니, 생각이 참되지 못하여 나고 죽는 윤회가 있으니.....(능엄경)

세상에는 세가지 이치가 있으니, 이는 늙고 병들고 죽는 이치이다. 너희들은 아끼지도 자랑하지도 그리워하지도 의미를 두지도 말라.(무상경)

그중에서도 맘에 드는 인용구가 있다. 피트 시거의 성경<전도서>구절이라고 하는데 정말 좋다.

모든 것에는 정해진 때가 있으니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ㅇ르 뽑을 때가 있다
죽을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허물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통곡할 때가 있고 뛰놀 때가 있다
돌을 내던질 때가 있고 모을 때가 있으며
끌어안을 때가 있고 밀어낼 때가 있다
찾을 때가 있고 포기할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로울 때가 있다.


문제는 무엇으로 찾을 때와 버릴 때를 구별하는가다. 이 말은 룽잉타이의 말이다.

당신을 걱정하는 이들은 아무런 사심 없이 당신에게 시간과 정성을 선물한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이렇게 읽으면 아는 것을 내가 일상 속에서는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싶다. 느끼며 사는 삶과 느끼지 못하고 사는 삶은 다른 것 같다. 이제 느끼며 살아야지.

이 책을 이번에는 끝까지 읽지 못할 것 같다. 오늘 2시면 이동도서관 차가 와서 반납을 해야 한다. 이런 마음으로 분주히 책을 읽다가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글귀를 만났다. 좀 길지만 차분히 읽고 또 읽어 본다.

행복이란 정치하는 사람이 암살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항의하는 사람이 무력 진압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상태다. 행복이란 부자가 납치를 두려워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이 마지막 밥그릇을 빼앗길까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상태다. 행복이란 부르주아가 유혈 혁명을 두려워하지 않고 프롤레타리아가 지도자의 말 한마디에 내일 당장 전쟁이 일어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상태다.
(중략)
행복이란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저녁 식탁에서 늘 같은 사람들이 늘 같은 자리에 앉아 늘 같은 얘기들을 두런두런 나눈다. 아이들은 재잘재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고, 노인들은 구시렁구시렁 틀니 불평을 한다. 주방에서는 늘 먹는 고소한 볶음밥 냄새가 풍기고, 거실 텔레비전에서는 늘 똑같은 뉴스가 시끄럽게 흘러나온다.

행복이란 돋보기를 써야 겨우 신문을 읽을 수 있는, 머리가 하얗게 센 꼬부랑 할아버지가 정정한 모습으로 길모퉁이 빵집에서 빵을 사들고 돌아와 당신의 아침잠을 깨우는 것이다.

행복이란 보고 싶었지만 평소에 만나지 못했던 사람이 한밤중에 갑작스럽게 전화하더니, 예고도 없이 손에 휴대전화를 든 채 문 앞에 나타나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다.

행복이란 아주 평범한 오후에 당신과 같은 도시에 사는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다음과 같이 얘기를 하는 것이다. "주말에 장보러 갈 건데, 계란이나 우유를 좀 사다줄까? 너희 집 냉장고 혹시 텅 비지 않았어?"

행복이란 컴컴한 바다 위에 고기잡이 등불을 주렁주렁 매단 배가 천천히 움직이면, 그림자가 파도와 함께 흔들이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행복이란 부쩍 키가 크면서 얼굴의 젖살이 사라져가는 열다섯 살 소년이 눈동자를 빛내면서 당신에게 세계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캐묻는 것이다.

행복이란 두 노인이 연못가에 앉아 금붕어에게 먹이를 주면서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는 것이다.

행복이란 아침에 손을 흔들며 "학교 다녀오겠습니다."하고 나간 아이가, 저녁이 되면 아무 일 없이 평소처럼 집으로 돌아와서 책가방은 방 한구석에 던져보리고 냄새나는 운동화를 의자 밑에 쑤셔 박는 것이다.